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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을 상징하는 경복궁 (사적 제 117호)

조선을 상징하는 경복궁 (사적 제 117호) 근정전크게보기

경복궁은 조선 왕조 제일의 법궁이다. 북으로 북악산을 기대어 자리 잡았고 정문인 광화문 앞으로는 넓은 육조거리(지금의 세종로)가 펼쳐져, 왕도인 한양(서울) 도시 계획의 중심이기도 하다.
1395년 태조 이성계가 창건하였고, 1592년 임진 왜란으로 불타 없어졌다가, 고종 때인 1867년 중건 되었다. 흥선대원군이 주도한 중건 경복궁은 330여 동의 건물들이 미로같이 빼곡히 들어선 웅장한 모습이었다.

궁궐 안에는 왕과 관리들의 정무 시설, 왕족들의 생활 공간, 휴식을 위한 후원 공간이 조성되었다. 또한 왕비의 중궁, 세자의 동궁, 고종이 만든 건청궁 등 궁궐안에 다시 여러 작은 궁들이 복잡하게 모인 곳이기도 하다.
그러나 일제 강점기에 거의 대부분의 건물들을 철거하여 근정전 등 극히 일부 중심 건물만 남았고, 조선 총독부 청사를 지어 궁궐 자체를 가려버렸다. 다행히 1990년부터 본격적인 복원 사업이 추진되어 총독부 건물을 철거하고 흥례문 일원을 복원하였으며, 왕과 왕비의 침전, 동궁, 건청궁, 태원전 일원의 모습을 되찾고 있다.

광화문 - 흥례문 - 근정문 - 근정전 - 사정전 - 강녕전 - 교태전을 잇는 중심 부분은 궁궐의 핵심 공간이며, 기하학적 질서에 따라 대칭적으로 건축 되었다. 그러나 중심부를 제외한 건축물들은 비대칭적으로 배치되어 변화와 통일의 아름다움을 함께 갖추었다. 수도 서울의 중심이고 조선의 으뜸 궁궐인 경복궁에서 격조 높고 품위 있는 왕실 문화의 진수를 느껴보자.

경복궁의 명칭 : 경복궁은 조선 왕조가 세워지고 3년 지난 후 완공되었다. 완공된 지 며칠 후에 개국공신 정도전은 태조의 명에 따라 경복궁이라는 궁궐 이름을 비롯해 강녕전, 교태전, 연생전, 경성전, 사정전, 근정전 등 주요 전각의 이름을 지었다. 경복궁이라는 이름에는 ‘새 왕조가 큰 복을 누려 번영할 것’이라는 의미가 담겨 있다.

임진왜란과 경복궁 화재의 원인 : 경복궁은 임진왜란으로 인해 모두 불타 버리는 비운을 겪는다. <선조수정실록>에는 왕실과 조정이 서울을 떠나자 성난 백성들에 의해 ‘도성이 불탔다’는 1592년 4월 30일자 기사가 실려 있다. 이와 달리 <선조실록> 5월 3일자 기사에는 왜군의 동태를 기술하면서 ‘이때 궁궐이 불탔다’고 되어 있어, 경복궁 화재의 시점과 원인에 대해 엇갈린 기록을 보이고 있다. 당시 일본 장수 오제키의 <조선정벌기> 5월 3일자에는 ‘안으로 들어가 보니 궁궐은 텅 비었고 사대문은 제멋대로 열려 있었다. (중략) 그 아름다운 모습은 진궁의 장려함을 방불케 하더라’라고 적혀 있어, 왜군이 들어오기 전에는 궁궐이 보존되어 있었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당시의 상황과 문헌자료에 근거해 볼 때 화재의 원인을 백성들이 아니라 왜군에게서 찾는 것이 더 설득력 있다고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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