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화 참성단 (강화 塹星壇)
사적 제136호
인천 강화군 화도면 흥왕리 산42-1번지
강화도 마니산(摩尼山) 꼭대기에 있는 돌로 쌓은 단(壇), 전설상 민족시조인 단군이 하늘에 제사를 올리기 위해 쌓았다고 전해지는 제단(祭壇)이다. 참성단은 둥근 모습으로 돌을 쌓은 하단(下壇)과 네모난 모습으로 돌을 쌓은 상단(上壇)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둥근 하단은 하늘, 네모난 상단은 땅을 상징한다고 한다.
이런 모습은 경주의 첨성대와 비슷하다.
참성단에 관한 기록은 『세종실록지리지(世宗實錄地理志)』에 처음 보인다. 이에 의하면, 참성단은 참성단(塹星壇)으로 기록되고, 세상에 전하기를 단군이 하늘에 제사지내던 석단(石壇)으로서, 위는 네모지고 아래는 둥글며, 높이는 10척, 석단 위의 네 면은 각각 6.6척, 아래 너비는 15척이라고 되어 있다. 이와 비슷한 기록은 『고려사 지리지(高麗史 地理志)』에도 보인다. 참성단이 민족의 성지(聖地)로 주목을 받게 된 것은 한말 일제시대 단군을 숭배하는 대종교(大倧敎)가 성립한 이후이다.
이때부터 강화도는 단군시대 정치중심지의 하나로 인식되고, 참성단의 네모난 상단과 둥근 하단은 각각 땅과 하늘을 상징하는 것으로 해석되었으며, 마니산은 음[땅]과 양[하늘]이 만나는 신성한 수중산(水中山)으로 이해되었고, 마니산 기슭에 단군사당이 건립되었다.
참성단을 민족성지로 서술한 기록으로는 김교헌(金敎獻)의 『신단실기(神檀實記)』, 북애자(北崖子)의 『규원사화(揆園史話)』, 대야발(大野勃)의 『단기고사(檀奇古史)』, 그리고 『대종교중광(大倧敎重光) 60년사(年史)』등이 있다. 8·15 민족광복 후 대종교의 영향을 받아 개천절이 제정되면서 이에 따라 참성단도 민족의 성지로 이해하는 전통이 그대로 이어졌다. 참성단 확대보기 참성단 중수비 확대보기 참성단의 동쪽으로 돌아가면 강화 유수 최석항이 1717년에 참성단 수축 사실을 기록한 비가 세워져 있다. 중수비에는 "우리나라 국토 수천 여리에 강화군은 나라의 방패가 되는 중요한 곳이며 강화 중에서도 마니산은 천신에게 제사 올리는 명산이다.
이 산 서쪽 제일 높은 곳에 돌을 쌓아 대를 만드니 이른바 참성단이다. 세상에 전하기를 단군께서 쌓아 제단으로 삼아 하늘에 제사 지낸 곳이라 한다.
돌아 보건대 수천년이 지났으니 풍우에 씻기고 깍여져 서북쪽 태반이 무너지고 동쪽 층계가 또한 많이 기울어져서 (중략) 선두포 별장 김덕하와 전등사 총섭 승 신묵이 주로 맡아 고쳐 쌓으니 20일 만에 일을 마쳤다."라는 내용이 쓰여 있다. 인천광역시 문화재자료 제13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