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상자막
- 연꽃 같은 절의 이름 없는 비 충북진천군진천읍연곡리보련산자락에있는사찰인보탑사에‘연곡리석비’가서있습니다. 그런데연곡리석비에는비문이전혀없어어떠한목적으로세운것인지통알수가없습니다. 다만, 비석의형태가고려시대에크게유행하였던탑비와완전히일치하는것을볼때, 이곳에터를잡고있던옛사찰의승려의탑비임에는틀림없어보입니다. 그런데비문이없으니 언제누구를위해세운것인지알수없는것입니다. 하지만연곡리석비는비문이새겨지지 않은백비(白碑)여서더욱유명합니다.연곡리석비는보탑사지장전뒷변보호각안에있습니다. 본래는마을의논가운데있던것을1968년현재의자리에비각을세우고보호하고있습니다. 사람들은석비가있던곳을‘비석이서있던곳’이라는뜻에서‘비선골’이라고부르게되었습니다.보탑사는풍광이아름다운절입니다. 보탑사는진천읍내에서서쪽으로 12km 즈음되는곳에있으며가는길에김유신장군생가도지나고절부근에는연곡저수지가있는데다보련산의산풍경과어우러져그야말로연꽃같이아름다운절이고그안에연곡리석비가있는것입니다.
보련산은과거에는만노산(萬弩山) 또는만뢰산(萬賴山)으로불렸습니다. 문헌기록이나고지도어디에도보련산이라는산이름은나오지않는것으로보아서최근 1996년에연곡리절터에 3층목탑으로된절을짓고보탑사(寶塔寺)라이름붙이면서산에도보련산이라는이름을붙인듯 합니다.
- 용이 날아오르는 모습을 닮아 연곡리석비는거북받침돌과이무기머릿돌을갖춘대형으로각부의조각이뛰어나이사지에주재하던어느고승의탑비로조성되었을것으로추정됩니다.이비석은조선시대이전의문헌에는전혀나타나지않고, 일제강점기인 1932년에간행된진천지역의지리서인『상산지(常山誌)』에처음으로소개되어있습니다. 이책에는비선골을비선동(飛仙洞)이라기록하여“날아다니는신선이사는마을”이라는뜻으로표기하였습니다.표현은재미있지만, 본래큰비석이서있다고하여비선골이된지명의본뜻과는거리가멀어보입니다.어쨌든『상산지』고적조에는다음과같이기록되어있다.
“비선동(飛仙洞)이군의서쪽 2리의만노산남쪽길상산(吉祥山) 북쪽에있는데, 삼한고찰의옛터로절터 서쪽에석비가있다. 비의높이는수장(丈)이고, 너비는수척, 두께는 1척으로돌이수정과같아사람의얼굴을비추어볼수있을정도이며, 글씨를새긴흔적이 없고손으로두드리면동동거리는북소리가난다. 비의머리에는아홉마리의용이여의주를가지고싸우는 모습을조각하였는데이로써이마을을구룡(九龍)이라고도부른다. 생각건대고찰이세워진지오래되어이끼가글씨를메우고뼈대만남은것으로보인다.” 또한이영길(李英吉)이이비를보고지은시가『상산지』와『조선환여승람』에실려있는데그전문은다음과같습니다.
알수없구나언제어느누가이비를세웠는가? 기이한형상은신의가호있는듯하다마는 글자가없으니속세사람이어찌알수있겠는가 비를받치고있는지대석과거북돌(龜趺)은한돌로되었으며바짝쳐든거북머리는말머리로표현되었습니다. 거북머리가용머리로표현되는것은고려시대의일반적인예인데, 말머리로표현된것은희귀한 특징이며 머리의안면이많이마손되어이상한모습인데, 후대에손상되어말처럼변한것일수도있습니다.
귀갑문은 6각형의통식으로큼직하고, 윗면에비석받침을마련하였습니다. 비석받침의측면에는안상(眼象)을장식하였고윗면에는연꽃무늬를돌렸으며 3단의괴임대로비몸돌을받치고있습니다.
아홉마리의이무기가서로엉키어꿈틀대는모습을새긴머릿돌은아랫면에 3단의받침이있는데, 비석받침위에있는괴임대와대칭을이루었습니다. 머릿돌정면에는비석의제목을써넣기위한네모진편액즉전액(篆額)이마련되어있는데, 여기에도아무런글씨가새겨지지않았습니다.
이전액주변에굵은구름무늬가돌려졌고좌우에는마주보고있는용머리가조각되었는데, 좌우측면과정상쪽에도쌍룡이배치되었습니다. 전액의좌우에있는쌍룡은입을크게벌리고있으나다른용들은입을다물고있고머릿돌정상부에는원형의보주(寶珠)가장식되어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