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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릉

목릉 전경
목릉(선조) 능침
목릉(의인왕후) 능침
목릉(의인왕후) 무석인
목릉(인목왕후) 석마
목릉 전경
목릉 정자각
목릉(선조) 병풍석과 난간석
목릉(인목왕후) 능침
  • 능호 : 목릉
  • 위치 : 경기 구리시 동구릉로 197
  • 능의 형식 : 동원이강릉
  • 조성시기 : 1600년(선조 33), 1630년(인조 8), 1632년(인조 10)
능의구성

목릉은 조선 14대 선조와 첫 번째 왕비 의인왕후 박씨와 두 번째 왕비 인목왕후 김씨의 능이다. 목릉은 같은 능역 안에 각각 다른 언덕에 능침을 조성한 동원이강릉(同原異岡陵)의 형식이다. 정자각 앞에서 바라보았을 때 왼쪽 언덕이 선조, 가운데 언덕이 의인왕후, 오른쪽 언덕이 인목왕후의 능이다. 선조의 능은 기본적인 왕릉상설에 맞게 조성되어 병풍석과 난간석, 혼유석, 망주석, 석양 및 석호가 배치되어 있다. 의인왕후의 능과 인목왕후의 능은 병풍석만 생략했을 뿐 상설은 선조의 능과 같다. 특히 의인왕후 능침의 망주석과 장명등에 새겨진 꽃무늬는 처음 선보인 양식으로 이후 조선 왕릉 조영에 많은 영향을 끼쳤다. 다만, 의인왕후의 능은 임진왜란을 겪은 후 처음 조성한 능이었기 때문에 석물들의 조각미가 다소 떨어지지만, 망주석과 장명등에 새겨진 꽃무늬는 처음 선보인 양식으로 이후 조선 왕릉 조영에 많은 영향을 끼쳤다. 정자각은 원래 의인왕후의 능 앞에 있었다. 그러다가 1630년(인조 8)에 선조의 능이 천장되면서 기존의 목릉 정자각을 이건(移建)하게 되자 의인왕후 능 앞에 있던 정자각은 헐었다. 이 후 인목왕후의 능이 조성되면서 치우친 정자각을 다시 옮기자는 주장이 있었으나, 이건이 번거롭다하여 신로만 정자각에 접하도록 하는 것으로 결정하였다. 따라서 현재 목릉의 정자각은 선조의 능을 향하여 있으면서 신로는 세 능으로 모두 뻗어 있다. 목릉 정자각은 조선왕릉 정자각 중 유일하게 다포식 공포로 지어진 건물로 보물로 지정되었다.

능의역사

목릉은 처음 선조의 첫 번째 왕비 의인왕후 박씨가 정유재란이 끝난 직후인 1600년(선조 33)에 세상을 떠나자, 현재의 자리에 유릉(裕陵)이라는 능호로 조성되었다. 이 후 선조가 1608년에 세상을 떠나자, 건원릉 서쪽 산줄기(현 헌종의 경릉)에 목릉이라는 능호로 조성하였다가 1630년(인조 8)에 물기가 차고 터가 좋지 않다는 심명세(沈命世)의 상소에 따라 현 위치로 옮기고 의인왕후의 유릉(裕陵)과 목릉의 능호를 합하여 목릉이라 하였다. 1632년(인조 10)에 선조의 두 번째 왕비 인목왕후 김씨가 세상을 떠나자, 현재의 자리에 능을 조성하였다. 처음 혜릉(惠陵)이라는 능호를 정하였다가 목릉과 능역을 합치자는 의논으로 현재의 모습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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