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융릉

융릉 병풍석 인석
융릉 병풍석
융릉 정자각
융릉 능침
융릉 전경
융릉 비각
  • 능호 : 융릉
  • 위치 : 경기 화성시 효행로 481번길 21
  • 능의 형식 : 합장릉
  • 조성시기 : 1789년(정조 13), 1816년(순조 16), 1899년(광무 3)
능의구성

융릉은 추존 장조의황제와 헌경의황후 홍씨의 능으로 합장릉의 형태이다. 융릉은 1789년(정조 13)에 배봉산에서 현재의 자리로 옮기면서 현륭원(顯隆園)으로 이름을 바꾸고 원을 다시 조성하였다. 진입 및 제향공간에는 홍살문, 판위, 향로와 어로, 수복방, 정자각, 비각이 배치되어 있다. 비각 안에는 두 기의 표석이 있는데 1기는 조선시대에 세운 조선국 표석(조선국 사도장헌세자현륭원)이고, 1기는 대한제국시대에 세운 황제국 표석(대한 장조의황제 융릉 헌경의황후 부좌)이다. 능침은 난간석을 생략하고 병풍석만 둘렀으며, 병풍석의 면석은 인조의 장릉(長陵)의 형태를 따랐고, 인석은 연꽃형태로 조각한 것이 독특하다. 그 밖에 문무석인, 석마, 장명등, 혼유석, 망주석, 석양과 석호를 배치하였다. 특히 문석인은 복두를 쓴 일반적인 왕릉형식이 아닌 금관조복을 입고 있다. 공간 구성 상의 특이점 중 또 하나로 꼽을 수 있는 것은 정자각과 능침이 이루는 축이다. 대개의 왕릉에서 정자각과 능침이 일직선상에 축을 이루는 반면 융릉은 일직선을 이루지 않고 있다. 홍살문의 오른쪽에는 원형의 연못인 곤신지(坤申池)가 있는데, 이들은 모두 풍수적 논리에 의해 조성되었다고 한다.

능의역사

1762년(영조 38)에 장조(사도세자)가 아버지 영조의 명으로 뒤주 속에 갇혀 세상을 떠나자, 현 서울 동대문구 배봉산 아래에 묘를 조성하였다. 이후 묘의 이름은 수은묘(垂恩墓)라 하였으며, 1776년에 정조가 왕위에 오르자 장헌세자라는 존호를 올리고 묘를 원으로 격상하여 이름을 영우원(永祐園)이라 하였다. 1789년(정조 13)에 원을 현재의 화산으로 옮기면서 현륭원(顯隆園)이라 하였다. 1815년(순조 15)에 헌경의황후(혜경궁) 홍씨가 세상을 떠나자 이듬해인 1816년에 현륭원에 합장으로 원을 조성하였다. 그 후 대한제국 선포 후 1899년(광무 3)년에 사도세자가 추존되자 능으로 격상되어 융릉이라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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