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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릉

원종(元宗) 이야기

원종(재세 : 1580년 음력 6월 22일 ~ 1619년 음력 12월 29일)는 선조와 인빈 김씨의 셋째 아들로 1580년(선조 13)에 경복궁 별전에서 태어났다. 1587년(선조 20)에 정원군(定遠君)에 봉해졌고,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아버지 선조를 모신 공으로 호성공신에 봉해졌다. 원종은 임진왜란 때 아버지 선조를 모시면서 험난한 일을 겪었으나, 나이가 아직 어렸음에도 의연한 태도로 이에 대처하여 모두가 그를 기특하게 여겼다고 한다. 그 중 다음과 같은 일화가 전한다. 전란의 한가운데에 선조는 의주로 피난을 떠나게 되었다. 이 때 신하들에게 명하여 정원군(원종)을 영변으로 데려가 왜적을 피하도록 하였다. 그 때 정원군이 영변에 이르러 울면서 말하기를, “이곳에 온 것은 내가 살기 위해 온 것이 아니고, 임금님의 명령 때문이었습니다. 지금 왜적의 형세가 날로 성하고 임금의 행차는 날로 멀어지니, 만에 하나 일이 잘못된다면 임금과 신하가 죽음과 삶을 같이 하지 못할 것인데, 이 몸이 간들 어디로 가겠습니까? 죽더라도 눈을 감지 못할 것입니다.” 라고 하였다. 선조는 이를 전해듣고 가상히 여겨 정원군을 다시 불러왔으며, 그 뒤로 정원군은 선조 곁을 떠나지 않고 전쟁이 끝날 때까지 그를 옆에서 모셨다고 한다.
광해군 즉위 후 황해도 수안군수 신경희가 셋째 아들 능창군을 왕으로 추대하려 했다는 무고로 인하여 커다란 옥사가 발생하였다. 이로 인해 능창군은 강화도로 유배지에서 자결하였고, 정원군은 그의 화병으로 1619년(광해군 11)에 40세로 세상을 떠났다. 1623년(인조 1)에 인조반정으로 첫째 아들 능양군이 왕위에 오르자 왕의 사친으로 정원대원군에 추존되었으며, 1632년(인조 10)에 인조의 정통성 문제로 인해 원종으로 추존되었다.

인헌왕후(仁獻王后) 이야기

인헌왕후 구씨(재세 : 1578년 음력 4월 17일 ~ 1626년 음력 1월 14일)는 본관이 능성인 능안부원군 구사맹과 평산부부인 신씨의 딸로 1578년(선조 11)에 태어났다. 1590년(선조 23)에 선조의 아들 정원군(원종)과 가례를 올려 연주군부인에 봉해졌다. 원종 사이에서 3남(인조, 능원대군, 능창대군)을 낳았다. 1623년(인조 1)에 첫째 아들 인조가 반정으로 왕위에 오르자 연주부부인에 책봉되고 계운궁(啓運宮)이라는 궁호를 받았다. 이후 1626년(인조 4)에 경덕궁(경희궁) 회상전에서 49세로 세상을 떠났으며, 1632년(인조 10)에 원종이 왕으로 추존되자 인헌왕후로 추존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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