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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릉

정순왕후(定順王后) 이야기

정순왕후 송씨(재세 : 1440년 음력 3월 12일 ~ 1521년 음력 6월 4일)는 본관이 여산인 여량부원군 송현수와 여흥부부인 민씨의 딸로 1440년(세종 22)에 전북 정읍 태인(현 정읍시)에서 태어났다. 1454년(단종 2)에 타고난 성품과 검소의 미덕을 인정받아 왕비로 책봉되었으나, 다음 해인 1455년에 단종이 수양대군에게 선위하고 상왕이 되자 의덕왕대비로 책봉되었다. 1457년(세조 3)에 단종복위운동이 일어나면서 사육신을 비롯한 단종 측근세력들이 제거되자, 단종은 노산군으로 강등되어 영월에 유배되고, 정순왕후는 군부인으로 강등되어 현재의 동대문 밖 정업원에서 생활하였다. 뒤쪽 산봉우리(동망봉)에 올라 영월을 바라보며 비통한 마음으로 단종을 그리워하며 한 많은 세월을 보냈다. 그 후 1521년(중종 16)에 82세로 세상을 떠났고, 1698년(숙종 24)에 정순왕후로 복위되었다.
정순왕후는 15세에 왕비가 되었다가 18세에 단종과 이별하고, 부인으로 강등되어 평생을 혼자 살아가야했던 불운한 인물로 왕후의 비극에 얽힌 여러 일화가 전해진다. 단종은 1457년(세조 3) 숙부인 수양대군에게 왕위를 물려주고도 복위사건으로 인해 영월로 유배되어 억울한 죽음을 맞게 되었다. 이 소식을 들은 정순왕후는 아침저녁으로 산봉우리에 올라 단종의 유배지인 동쪽을 향해 통곡을 했는데, 곡소리가 산 아랫마을까지 들렸으며 온 마을 여인들이 땅을 한 번 치고 가슴을 한 번 치는 동정곡을 했다고 전한다. 그 뒤부터 이 봉우리는 왕후가 동쪽을 바라보며 단종의 명복을 빌었다 하여 동망봉이란 이름으로 불리게 되었다. 한편, 『한경지략』에 의하면 영도교 부근에 부녀자들만 드나드는 금남의 채소시장이 있었다고 한다. 이는 왕후를 동정한 부녀자들이 끼니 때 마다 왕후에게 채소를 가져다주다가 궁에서 말리자 왕후가 거처하는 곳에서 멀지 않은 곳에 시장을 열어 주변을 혼잡하게 하고, 계속해서 몰래 왕후에게 채소를 전해주려는 여인들의 꾀에서 비롯되었다고 하는 일화가 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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